작가 협업 - 달마고도 에세이

2023. 12. 7. 22:15활동 기록

 

이어지는 만남이 고마워.

 

낮에 나온 반달

2023년 11월 11일 

 

 

친구 따라 강의 남쪽 정도가 아니라 땅끝 남쪽까지 갔다.

 

친구는 외국에 가있는 친구의 강아지를 맡아 돌보고 있었다. 지구 반대편에서는 안전한지 걱정하는 친구를 나와 또 다른 친구 또한 걱정하며, 우리는 산에 올랐다. 늦가을 색이 푸근했고 하늘은 차갑게 청명했다. 신나게 산을 오르는 강아지 발걸음에 마음이 가벼워지고 하늘처럼 마음이 갰다.

 

멀리 왔지만, 처음 오는 곳이 아니었다. 올 때마다 다른 이유로 왔고, 미황사를 지나 이번에는 친구 따라 산 속으로 들어갔다. 달마고도를 따라 걸었다. 달마산 모습을 마주하니 마음이 조금 더 씩씩해지는 것 같았다.

 

볼 때마다 감탄하는 장쾌하게 솟아있는 달마산 자락이 무너져 내린 걸까? 너덜이라고 부른다는데, 무지한 나의 소견으로는 짐작도 설명도 하기 힘든 진기한 모습이 너르게 펼쳐져 있었다. 바다로 가고 싶어 산이 몸부림이라도 친 걸까? 쏟아진 듯 널린 바위들 끝에는 남해 바다가 보였다. 바위들이 저마다 이야기 한자락 품고 있을 것 같다. 가만히 바위에 몸을 기대면 들어볼 수 있으려나. 바람을 맞으며 바위에 앉아 있었다. 큰 바람재에서 맞는 바람이 나를 조금 더 큰 사람으로 키워주면 좋겠다.

 

오랜 땅의 역사를 듣고 싶었다. 친구가 소식을 전해주었지만 도시 생활에 쫓겨 참여하지 못했는데, 대신 오래된 돌 위로 내려앉는 따사로운 볕을 쬐었다. 인간의 역사에만 편협하게 골똘하던 나는 요즘에서야 허리를 펴고 고개를 들어 하늘과 주위를 본다. 친구들이 보인다.

 

이들에게는 인간과 인간 아닌 존재들의 구별이 흐릿하다. 세상의 이치가 인간만을 위해 존재하고 인간만을 위해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아가는 현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친구들이 바라보는 곳, 친구들이 머무는 곳에서, 나는 친구들을 바라본다. 너덜에 앉아 있는 친구 모습은 제각각 다른 모양을 하고 있는 너덜 바위처럼 보였다. 먼 바다를 바라보며, 백악기부터라는 가늠할 수 없는 긴 시간이 스며있는 바위들에게 위로를 받고 있나? 편협한 인간들이 벌이는 전쟁과 파괴를 마음 아파하는 친구에게, 나보다 깊고 충분하게 위안을 주고 있는 것 같다.

 

‘자연’이라고 인간 문명 바깥에 두거나 자연에는 문명 아닌 각별한 것이 깃들어 있는 것처럼 말하는 매체들을 자주 접하지만, 해남에는, 달마산에는 친구들이 깃들어 있다. 내려오는 길, 한참을 앞서 가다 뒤돌아보니 친구들은 산과 하늘을 보며 기원하고 있었다. 친구들 모습이 나무처럼 보였다. 산을 이루는 나무처럼, 그들도 산을 이루고 있었다. 도시의 피로를 이고 와서 풀어놓고 가는 휴양지로 대하지 않았고, 도시로 가져가서 악세사리 삼기 위한 예쁜 사진 만드는 배경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도시를 떠나 마을에서, 마을을 품고 있는 산과 들과 바다를 공부하고 벗삼고, 그곳에 깃든 인간 아닌 존재들을 깊은 호기심과 사랑의 눈으로 관찰하는 친구의 생활과 마음을 만나자니 나는 너무 동떨어졌나, 나는 좀 뜬금없나 움츠리지만.

 

친구 따라 산에 오르고 바다를 바라보고, 바위에 기대어 눈을 감아보니 연결의 연결이 이어지는 거구나 깨닫는다. 더 가까이 들여다보고 보살피는 친구, 그 곁에 쪼르륵 따라가서 무엇을 보는지 보살피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듣게 되고, 그 바다에 그 숲에 누가 살고 있는지 내가 비록 직접 만나보지 못했어도, 만나고 온 친구를 만나고 있다. 나는 다시, 내가 만나고 온 친구와 친구가 만난 그 존재들 이야기를 하겠구나. 평화로이 달마산에 올랐던 친구가 산양과 숲 생명들의 서식지를 파괴하는 케이블카 공사를 반대하는 간절함을 조금 멀리서지만, 공감하고 있구나. 연결의 연결. 다행이고 소중하다.

 

대학 후배가 올 봄 팔레스타인에 가서 사진을 찍고 돌아왔다. 주민들이 살아가는 모습 그리고 죽어가는 모습을 담아왔다. 지인들과 모여 앉아 사진을 꺼내놓고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편협하게 알던 벽들이 허물어지고 교활하게 잔인한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이 허물어졌다. 최근 뉴스에 등장하던 가자지구가 아니라 서안지구 도시와 교외지역 곳곳의 이야기였다. 이스라엘 군대와 정착민이라고 부르는 이스라엘 이주민들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서식지’를 파괴하고 있었다. 못살게 굴고 폭격을 퍼붓고 내쫓고 죽이기도 하며, 그들이 아니라 자신들이 살 곳으로 바꾸고 있었다. 총으로 법으로. 인간이 인간에게 하는 무시무시한 일들은, 인간이 산을 깎고 도로를 내고 터널을 뚫으면서 높디 높은 건물을 세우느라 그 많은 곳을 차지하면서 동물에게 저질러온 일이기도 하다는 걸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전쟁과 파괴가 인간에게 저질러지는 비극이기만 한 것이 아니지. 참 안좋게도 연결되어 있다.

 

달마고도를 걸으며, 달마는 누구고 고도는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달마가 다녀간 산은 아니라지만 이 비범한 산자락과 풍광을 보자니 달마선사 이름을 따온 것이 그리 이상하게 여겨지지는 않는다. 고도는 무엇일까? 높은 길일까 혹은 고독한 길이려나? 얼마나 오래된 길이려나. 찾아보니 “천년의 세월을 품은 태고의 땅. 낮달을 찾아 떠나는 구도의 길”을 주제로 2년에 걸쳐 옛길을 복원하고 새로 이어 만들기도 한 달마산 둘레길이었다. 사람들이 산을 가까이 하고 편히 오르라고 만든 길이 더는 넓어지거나 인간의 편의에만 치우쳐 달마산에 깃든 인간 아닌 존재들의 삶을 훼손하지 말기를 바란다. 낮달을 찾아 구도의 길을 떠나자고 하니 더욱.

 

이렇게도 연결이 된다고? 달마고도 복원을 시도한 주제 낱말이 십여 년 넘게 쓰고 있는 내 별명이라니.

 

십 년도 더 넘은 예전에, 시끄러운 마음인 채로 미황사에 함께 왔던 옛 친구는 너덜 바위에서 보이는 저기 먼 바다 건너에서 비자림을 부수지 말라고, 구럼비 앞 바다에 전쟁 무기를 들이지 말라고 싸우는 이들의 친구다. 생을 살아가는 내내 아픈 마음을 어쩌지 못하는 친구에게서 자신을 가두었던 방을 나섰다는 소식을 들었다. 고맙고 반갑다. 큰 바람재에서 빌었던 바람이 가 닿았나보다.

 

백악기로부터 아니 그 전 깊은 땅 속의 마그마로부터 시작되었을 바위의 시간은 가을 볕 아래 너덜에 앉아 바다 건너 평화를 기원하고 안부를 묻는 우리의 시간과 겹쳐졌다. 연결과 만남은 인간에게만 속하는 낱말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