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2. 11. 16:27ㆍ활동 기록
1. 해남 히든 어스 그 시작, 돌의 말을 들어보려는 시도
윤지선
9년 전 땅끝으로 처음 귀촌하면서 지도 상으로는 남북으로 쭈욱 하나로 이어져 보이던 달마산과 두륜산을 가보니 지형 지세가 너무나 달랐다. 특히나 돌이 너무도 달랐다. 아 다른 시기에 만들어진 산이겠구나 싶었다. 그 이상은 알 수 없고 아무리 뒤져도 기호 투성이 지질도 외에는 찾을 수가 없어 짐작만 하게 되니 답답했다.
그러다 박정웅 선생님을 드디어 만나 새봄과 함께 해남의 지질에 대한 답안지를 만나게 되니 그간 궁금했던 해남의 산과 바다에 물음표만 쌓아가던 내 질문에 정답 답안지가 시원스레 공개되는 듯, 묵은 체증이 툭 벗겨지고 쑥 가시는 듯 했다. 그간 답답증 속에 쌓여있는 무언가가 풍화 작용으로 벗겨져 나간 그 틈으로 내 안의 무언가가 융기하는 순간이었다.
더구나 해남의 산과 바다에 널리고 채이는 바위와 암석과 돌들은 그냥 흔해 빠진 돌멩이가 아니었다. 울릉도, 제주도, 백령도, 북한산, 설악산에 가서 봤던 돌들을 다 모아놓은 듯이 해남 여기저기에서 나타나는 전국의 기암괴석들. 왜 내 눈엔 그렇게 보이지? 이게 환상이 아니라면, 착각이 아니라면? 정확히 알고 싶다. 구분하는 기준과 눈, 안목을 갖고 싶다. 이 돌은 언제 생겼지? 어떻게 생겼지? 이러한 질문이 지질학이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이곳의 돌과 대화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주워오는 것이었다. 바닷가에 작은 돌들. 무지개 떡 같은 층이 보이는 돌들도 있고, 투명해지려다 만 반짝이는 돌들도 눈에 많이 띈다. 바다에 가면 용왕님의 선물처럼 종종 수정이 박힌 돌조각이 나타나기도 한다.
박정웅 선생님과 두 번의 지질 수업을 하고 나니 이제 조금 보인다. 층이 보이는 돌들은 무언가가 쌓였던 흔적이다. 땅끝 바닷가에는 진흙이 쌓이고 압력이 가해진 셰일도 적지 않아서 주워다가 아이들과 바위에 그림을 그리기도 좋다.
이제 형태가 조금씩 보이니, 다음번엔 색깔에 접근해봐야지. 그렇게 아이의 눈처럼 명암 구분을 하고 형태와 색을 구분해나가듯 나도 돌에 눈을 떠갈 수 있지 않을까. 돌과 대화를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저 산이 저 바다 저 섬이 이 땅이 이 바다 들려주는 옛이야기와 지금과 앞으로의 시간 그 지층에 대한 이야기를 지구 가이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되기를.
지난 9월 새봄과 함께 오른 달마산의 가파른 기암괴석과 스무 개의 너덜겅은 박정웅 선생님이 시원스레 답해주셨듯 5억 년도 더 이전인 선캄브리아기에 만들어진 규암이다. 판게아 이전의 지구 초기 대륙이 적도 부근에 형성될 때 따뜻한 바닷가 해안에 쌓인 모래들이 오랜 시간과 큰 압력으로 지하에서 사암이 되고 지구의 이판과 저판이 움직이며 접촉변성작용을 받아 단단한 규암이 되었다. 수정은 특히 석영이 많은 규암에서만 발견되는 보석이다. 규암이 더 강한 조건을 만나 자라난다. 그래서 이제 융기한 지금은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
땅속에서 만들어진 시간의 결정체. 판의 이동으로 옮겨온 이 땅은 지금 여기 다른 땅과 만나 산이 되어 솟아올랐다. 우리집 뒷산 격인 저 달마산이 적도 부근 바다였던 지구의 대륙이 형성되던 시절을 이야기 해주고 있다니. 믿기는가? 바닷가에서 만나는 돌 이야기는 너무나 다양해서 각각의 이야기를 오롯이 잘 귀 기울여 들어야 할 정도이다. 그래서 내년엔 이 달마고도 권역의 산과 바다를 더 본격적으로 탐구해 보고자 한다.
2. 달마고도의 산과 바다가 품어온 오래된 지혜의 길
달마산은 홑산이다. 두륜산이나 월출산처럼 여러 겹의 능선이 포개진 겹산이 아니다. 단 한줄기의 능선이 척추가 되어 솟아나 그 속에 보이지 않는 장기들이 매달려 있듯이 생명들이 숨 쉬고 있다. 덩치가 큰 거대한 산도 아니다. 가파르지만 해발고도 489미터로 높지 않아서 짧은 시간 안에 능선부에 도달할 수 있을 정도로 접근이 아주 어렵지 않은 곳이다. 덩치가 크지 않고 작지만 날렵하고 섬세한 근골격계를 가진 셈이다.
그러다 보니 작고 만만한 산이라고만 여기고 오만한 발걸음으로 이 산에 들었다간 큰 코 다친다. 능선부의 기암괴석은 자칫 다른 세상으로 인도할 낭떠러지. 그 위험 짜릿한 맛에 전국의 산악인 동호회들마다 자주 이곳을 명소로 여기고 찾곤 하다 보니 능선부 훼손도 심각했고 사고도 잦았다. 지리산이 그래서 둘레길을 고안했듯이 미황사 전 주지 스님도 달마고도를 고안해냈으리라.
사실 100년전만 하더라도 한반도 산 정상부는 산신령의 영역이었다. 산 좋고 물 좋은 금수(錦繡)강산에는 금수(禽獸)가 많았고, 두렵기도 했지만 추앙 받던 말 그대로의 산군인 호랑이가 웬만한 산봉우리마다 살고 있었다. 특히나 능선부로 올라탄다는 것은 호랑이를 만날 확률이 높았다. 그야말로 호연(浩然)지기를 품고서나 가능한 일이었리라. 그래서 한반도의 산은 인간에게도 뭍짐승에게도 생의 원천인 어머니 산이자 이 마을에서 저 건너 마을로 가기 위해 건너가야 하는 길이었다. 그래서 오랫동안 산길은 능선부의 척추로만 있는 것이 아니라 뭍생명이 그 속살에 들어 숨을 이어나간 둘레길이었다고 봐야 옳다.
야생동물들도 저마다의 몸집이 가기에 적절한 좁은 문으로 통하는 작은 활기의 길들을 낸다. 우거진 깊은 숲에 오소리가 똥굴을 파놓는다. 오소리는 똥굴을 파놓고 한동안 그 굴에만 똥을 싸는 습성이 있다. 화장실이 밥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난히 뚱뚱한 몸집으로 같은 길을 오가다 보니 다져 진 길. 그렇게 오소리가 오솔길을 내면 그 똥내 맡고 오는 곤충들, 곤충 먹으러 오는 작은 땃쥐들, 그 쥐를 먹으러 오는 또 다른 작고 큰 동물들.
그 길은 다른 동물들의 길이 되고, 그 산을 넘는 보부상과 한양 가는 선비의 짚신이 오가는 사람의 길이 된다. 산을 오래 다녀본 이는 안다. 그렇게 나 있는 칠부 능선의 길을.
40년 동안 달마산에 들었던 금강스님도 그 길을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이낙연 전남도지사와 제안해 이 달마고도가 난 것이다. 미황사 중흥기에 있었다는 12암자터 기록이 증명하듯 길이 있었고 인간사의 흥망성쇠에 따라 지워졌을 길.
오소리 똥굴도 너무 성하면 냄새 맡은 멧돼지의 불도저에 무너지고 길이 파헤쳐 지곤 한다. 그러면 다시 그 길은 잊혀지고 휴식년에 들어가곤 했으리. 그사이 오소리는 또 다른 오솔길을 만들고 다시 길을 냈으리라. 길을 잃는 것은 아예 영영 잃는 것이 아니다. 또 다른 길 찾기로 길을 잇는다.
3. 신성과 생명성을 회복하기
산군 호랑이와 함께 산신성이 사라지고 돈본주의가 그 자리를 차지한 오늘날에 이 땅끝의 산과 바다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그저 돈의 가치로만 등가 치환 계산할 부동산일까? 더욱이 달마산은 70퍼센트가 사유지다 보니, 미황사 중흥기에도 그리 많은 사람이 반대를 했어도, 커다란 축사가 악취 민원도 무색하게 들어왔고 대규모 태양광이 산 중턱까지 오르고 있다.
일찌감치 신라 경덕왕 때인 749년에 미황사가 만들어 지면서 키를 낮춰 인간계에 다정한 부처님의 손바닥을 내밀어 주셔서 많은 이들이 오갔지만, 이 산에 들어본 이는 이내 알게 된다. 결코 만만한 산이 아니며, 깊고 오랜 지혜를 곳곳에 다채롭게 품은 산이라는 것을. 그 막연하기만 했던 느낌들을 문화적으로만 만나오다가 이번에 지구 과학적 사실로서 알게 되니 더욱 놀랍다.
한반도가 형성되는 초기의 모습을 간직한 몇몇 섬들처럼 이곳 땅끝에 한반도 형성 초기의 지형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는 것이 고무적이다. 그래서 땅의 끝이 시작이라는 해남군의 표어 그대로 한반도 땅의 시작이자 선캄브리아 시대 지구에서 땅이 만들어지던 그 옛날의 이야기를 저 달마고도가 들려주고 있었다니.
올해 초부터 본격 시작한 해남탐조모임을 통해 함께 새들을 만나면서 지구 나침반을 몸에 새기고 지구 별을 여행하는 철새들에게도 이 땅끝은 너무나 중요한 서식처구나 실감했다. 시베리아와 호주 북반구와 남반구를 봄 가을 옮겨 살아온 도요새들이 끝없는 바다를 쉬지 않고 날아 반으로 줄어버린 몸무게로 닿는 첫 땅 첫 갯벌이 바로 여기 땅끝이다. 가장 큰 해안선을 품고 있었던 새만금이 세계 최장 길이의 방조제로 가로 막히면서 떼죽음을 맞이하고 전세계 생명 다양성과 개체 수가 격감하고 있는 대멸종기에 이 땅끝은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
8년간 혼자서만 듣고 보고 하다가 함께 보고 들으니 1차원적 막연했던 느낌들이 3차원적 입체감을 얻고 구체적 사실로 다가오고 4차원적 시간의 흐름까지 입혀져 과거와 미래가 함께 느껴진다. 그렇게 이 땅과 이곳에 사는 자연의 이야기를 이제사 제대로 듣기 시작한 셈이니 더욱 눈뜨고 귀 기울이게 된다. 새봄처럼 새롭게 관입하는 새로운 눈을 가진 청년들과 함께 자연을 깊이 들여다봐 온 선배들과 함께 중간 지층이 되어 내년에도 달마고도의 이야기를 새로이 써보고 싶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다른 중국의 기록에도 언급되며 달마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듯이 해상시대 이 주변을 지나던 뱃길 사람들에게도 오랜 시절 랜드마크 역할을 해온 중요한 산이다. 그러나 호랑이도 사라지고 지금은 지자체마다 00타워가 세워지고 그 탑을 연결 시켜 케이블카를 만들어 나르며 산신성을 파괴 시키고 있으니 개탄할 일이다. 다들 이 미친 짓에 아무도 제제를 걸지 못하고 있다.
아이들 해설을 하면서 더 절감하게 된 케이블카의 현실. 이제 아이들은 산은 벌레 많은 귀찮은 곳으로 인식한다. 자연으로부터 멀어지고 책상 앞에서 자라온 오늘날의 우리 아이들에게 자연은 이제 불편하고 낯선 곳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더 지자체마다 세워 진 케이블카로나 산을 올라보고 흘깃 보고 내려오게 된다. 자연이라는 더 큰 놀이터를 잃어버린 아이들에게 자연을 보호하는 사람으로 자라달라고 우리가 부탁할 수 있을까? 자연과의 연결감을 갖기 위해서는 100번의 시청각 가상현실 간접 교육보다 1번의 직접 만나는 교육이 효과적일 수밖에 없다. 비교할 수 없는 효과. 가상현실 증강현실은 진짜 현실 세계의 자연과의 만남을 대체할 수 없다. 그래서 아이들과의 자연 해설을 자처했던 것인데, 코로나 이후로 대부분의 프로그램들이 안전 최우선 지향이 되어오다 보니 아이들은 자연과 더 멀어진 듯하다. 아이들에게 케이블카는 그저 놀이 시설로 느껴진다니 마음이 아팠다.
지난달은 40년간 새로운 케이블카 계획을 계속 막아온 설악산에 케이블카 착공식이 있는 날이었다. 산 전체가 천연보호구역으로 65년부터 문화재청의 비호로 지켜왔고, 70년 다섯 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국립공원법으로 보호해왔으며, 82년에는 유네스코가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해 국제적을 보존하자고 선언한. 국립공원 백두대간보호지역이자,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자연유산. 이 다섯 겹의 보호장 쉴드에 일제 때보다 더한 쇠 말뚝을 박는 이날 나는 설악에 갈 수 없었다. 그 대신 이런 현장에 친구들과 함께 가는 젊은 활동가인 새봄을 응원하고 나는 나의 자리에서 다음 자리를 준비하기로 했다.
착공식 바로 다음날은 아침부터 유치원 아이들의 해설이 있는 날이었다. 해남관광의 필수 코스처럼 되어있는 케이블카의 또 다른 버젼들. 유치원 아이들과 땅끝 모노레일을 타면서 놀이기구가 아니라고, 형아 되고 누나 되면 꼭 걸어서 올라오자고 했다. 우수영관광지에 곤돌라식 케이블카를 타면서도 청소년 아이들에게 나는 교육청에서는 해남군에서는 시키지 않는 당부의 말을 다짐의 말을 한다. 승강기와 케이블카는 놀이기구가 아니라 운송수단이라고. 그리고 지속 가능한 에너지에 대해.
관입한 새로운 지층의 예술가 친구들과 오래된 지혜의 말들을 빌려 들으며 발아래 저 바다에 저 산에 보아야 할 것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내 마음에 아이들 마음에 작은 씨앗을 심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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